바빌론의 아이들
Children of Babylon
모든 폭정중에서도, 그 희생양들을 위한다며 이뤄지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폭압이다. 우리를 위한다며 우리를 환란에 빠트리는 이들은 쉼도 끝도 없이 우리를 괴롭힌다. 그들의 양심에는 거리낄 것이 없으니. _ C.S.Lewis
1911년, 초현상적인 재능을 숨긴 쌍둥이 남매 에드윈과 뮤리엘 카쉰은 그들의 후원자 아서 그레이의 보호와 규율아래 살아왔다. 십오년의 세월을 지켜봐온 오랜 후원자가 손아귀를 조이기로 하는 순간, 남매는 지금껏 유보해왔던 모든 것들과 대면해야 하게 되는데.
개요
소설 바빌론의 아이들은 1880년에서 1911년까지 대서양 양쪽의 두 나라를 무대로, 빅토리아 시대에서 에드워디안 시대로의 전환기를 살아가는 남매를 따라갑니다.
한 세기에 걸쳐 일궈온 산업 혁명 인프라가 비로소 사회에 진보라는 과실을 나눠주기 시작할 무렵. 영국은 노조 인사가 의회에 진입하여 노동당을 세우고, 미국은 다양한 사회적, 정치적 개혁을 감행하던 진보의 시대. 우생학은 진보 인사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체화하고 진지한 대안으로 언급하던 '과학적 틀'이었습니다.
한편 전파와 방사능 연구에 힘입어, 과학자들은 이번에야말로 영혼의 세계를 과학적으로 규명해내려 했습니다. 영국에서는 SPR (초자연 현상 학회. Society for Psychical Research)이, 미국에는 ASPR이 설립되어 '보이지 않는 세계'를 들쑤시는 연구자들이 왕성하게 활동했습니다.
에드윈 카쉰은 프란시스 갈턴 경이 우생학의 기초를 닦은 케임브릿지에서 수학한 생리학자이며, 뮤리엘 카쉰은 여학생들이 하버드의 연구 시설을 이용할 수 있게 해준 레드클리프 출신 화학자입니다. 꼭 닮게 태어나 함께 자라던 둘은 닮은듯 상반된 각자의 방식으로 이 역설적이고 역동적인 시대를 겪어나갑니다.
그들의 후원자는 남매의 생존이 자질의 증명이라 했지만, 둘은 그 생존아래 무수한 죽음이 있음을 잊지 못합니다. 그들의 눈에는 사람이 절명하는 순간 몸에서 분출되는 입자들이 보이기에. 형제는 SPR에서 유령이 영매사의 면역 반응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누이는 ASPR에서 영혼이 가연성 입자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하려 합니다. 형제는 한 순간에 사람을 죽일 수 있고, 누이는 가끔 벽 뒤로 사라질 수 있음을 비밀에 붙이고.
오래된 세계는 죽어가며 새로운 세계는 난산 중에 있으니 : 지금은 괴물들의 시대라. _ Antonio Gramsci
주요 인물
카쉰 남매
Cashin Siblings
우리는 언제나 손을 잡고 있었다. 쥐고 있던 모든 것이 사라져도 너는 내가 있었고, 나에게 네가 있었다. Tá ár ngrá libh. Bígí le chéile. 목소리도 알 수 없는 아버지의 우리를 위한 마지막 기도. 만지고 만져 종이에 흑연의 음각만 남아가던 말들. 언제나 서로 함께 하거라. 우리의 사랑이 너희에게 머문단다.
[1부 : 1장]
30세, 아일랜드 골웨이 태생 쌍둥이. 생일도, 부모의 이름도 알지 못하지만 함께 태어났음은 확신한다. 이 손에서 저 손으로 옮겨다니는 중에도 서로는 잃지 않았다. 성인기에는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십 년을 보냈지만, 적어도 일 년에 한번은 꼭 만난다. 서로를 그리워하고 아끼는 만큼 걱정시키지 않기 위해 각자의 발아래 많은 것들을 숨겨왔다.
에드윈 카쉰
Edwin Fael Cashin
말수가 적고 속을 쉽게 내비치지 않는 성미라 좀처럼 가까워지기 어렵다는 평. 장래가 촉망받던 초현상 연구자였으나, 오 년전 진행중이던 박사 연구를 폐기하고 공안부 조사관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즈음 한 소년을 조수로 들였다. 남매의 후원자이자 공안부 특수인력부서 경감인 아서 그레이가 그의 직속 상관.
뮤리엘 카쉰
Muriel Sorcha Cashin
기류를 읽고 필요한 말을 하는 법을 안다. 상황을 진정시키고 주위의 이해를 구하는 것이 몸에 밴 한편으로, 가끔 진력이 나기도 한다. 유년기에 겪은 초현상 화재의 원인을 알아내고자 화학자의 길을 걷게 되었지만, 연구 진행이 녹록치 않다. 이 년전 한 소녀를 양녀로 들였다.
다인 피어스
Dyne Lingyie 令仪 Pierce
어느 합리적인 세계에서 다인은 살아있지 말아야 했다. 에드윈도 진작에 뉴게이트에서 목이 매달려야 했다. 사람을 죽인 사람에게 일어나야 하는 일들이 있었다. 그러나 다인은 이 생존을 증오할 수 없었다. 그렇게 이 생존이 증오를 희석했다. 먹물에 섞이는 잉크처럼.
[1부 : 6장]
20세, 청의 광시 소수민족 자치구 출신. 오 년 전 런던 항에 내리자마자 현행범으로 체포되었지만, 에드윈 카쉰이 모종의 거래를 통해 소년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에드윈이 그의 친애하는 누이에게서도 숨기는 많은 것들을 보아왔다. 새벽마다 백단향을 피우고, 가끔 귀전을 불태운다.
디어드르 도우
Deirdre Dow
그을음 하나 없는 깨끗한 손과 진주 장식을 단 올림머리만 보아서는 짐작할 수 없겠지만, 디어드르 도우의 고향은 웨스트 버지니아의 한 탄광촌이었다.
[1부 : 5장]
17세, 웨스트 버지니아 출신. 열두 살 남짓할 무렵 홀로 뉴욕으로 흘러든 소녀는 뛰어난 영매사의 자질을 보였지만, 삼 년 만에 쫓겨났다. 뮤리엘 카쉰은 소녀가 거리의 익명이 되어 사라지기 전에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가끔 지나치게 생생한 꿈을 꾸지만,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아서 그레이
Arthur Eldon Gray
그레이 경감에게 런던의 밑바닥은 수치로 확인되는 사실이었다. 범죄 통계와 수사 보고로 요약되어 그의 책상 위에 쌓였다. 객관적인 지표상으로 사람을 믿을 이유가 없는 사람이었다. 사적인 관계를 거의 만들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일 거라고, 뮤리엘은 생각하고는 했다.
[1부 : 1장]
48세. 대대로 해군 장교를 배출한 젠트리 가문의 차남. 런던 경시청 공안 경감. 해군 사관학교 생도였으나 83년 폭탄 테러로 입은 부상으로 인해 길을 틀었다. 요인 암살과 테러 모의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 정보전의 중요성을 주목한 이들 중 하나. 집요하고 효율적이며 유능하지만 자상함과는 거리가 멀다.
장별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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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이제 너도 알겠지, 미스 카쉰. 실증을 벗어나는 현상들이 존재한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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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그레이는 종종 에드윈이 시키지도 않은 시시포스의 일을 한다고 했다. 에드윈은 필요한 일을 하는 것이라 답했다. 이것이 그의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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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너희 남매는 뛰어난 자질이 있어. 지원하며 지켜봐온 내가 보증하지. 하지만 도약 직전에 스스로 손을 잘라버리고 있어. 이건 정직함이 아니야. 미련한 낭비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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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언제부터 시작되었을 지도 모르게 꾸준히 이어져온 쇠락이 손때처럼 들러붙어 쉽사리 걷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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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문제는 자궁에 있지 않아요. 음부에 홀리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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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하지만 이제 알겠지." 에드윈의 미소가 짙어졌다. "영혼이 폭발할 수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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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괜찮은 것이 무엇인지, 괜찮아지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아마 조금 전까지는 괜찮았다. 눈은 끊임없이 묻고 있었다. 왜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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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그것은 기다리고 있었다. 갱도의 어둠 속에서. 그리움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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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당신은 좋은 사람이죠. 저에게 해가 될 일은 하지 않을거고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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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조율을 시도할 수는 있어도 거부할 수는 없었다. 그에게는 그러한 자격이 허락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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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두려워할 것 없어. 그가 말했다. 너는 영원히 죽지 않을테니. 네 역할은 아주 간결하고 숭고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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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장
다시 물었다. 목소리에 울음이 들어차는 것을 못내 분해하면서. "돌아올 생각은 있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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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이것 마저도 살아남을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강인함의 문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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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어디까지 성실해질 수 있었을까? 어디까지 유능해질 수 있었을까? 언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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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변화는 고통을 수반하지. 네가 이질적으로 느끼는 모든 것들이 네 일부가 되는 날이 오게 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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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에드윈은 그의 바람 한 가지를 들어주고 있었다. 죽지 마세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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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느껴지는 것을 말하자면 그랬다. 그림자가 사람을 눌러죽였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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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이대로 바닥이 갈라져 그를 불타는 석탄 위로 떨어트린다면, 차라리 받아들일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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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이곳이 우리가 삶을 시작한 곳이었고, 살아낼 곳이었다. 덩굴 뿌리가 끝내는 건물을 집어삼키고 금을 내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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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此心安處是吾鄉 제 마음이 편한 곳이 저의 집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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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그의 질서를 사랑할 수 있겠어?" "사랑해야지, 살아내려면. 그러다보면." 의심만을 부정하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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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여자는 사방에 있었다. 광막한 것이 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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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허용이 잔존하는 한 한계는 없었다. 이미 아주 오래된 과정이었는지도 몰랐다. 훼손은 양쪽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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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장
그에 비하면 전 지극히 양심적이죠. 누군가는 살인이라 하고말겠지만. 적어도 둘이 죽게는 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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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장
어딘가에서 들리는 울부짖는 소리가 아팠다. 아, 안되는데. 저렇게 울면 두통이 올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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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장
그러나 가장 분명한 인과들은, 그러니까 이 모든 것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가장 피비린내나는 장면들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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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장
다인은 사과하지 않을 남자의 붉은 눈에 대해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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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장
그것이 아닌 나를 살아낼 자신이 없었다. 그게 우리를 영영 그 순간에 잡아두고 마는 것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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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장
길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혹은 그의 짐승을. 이 껍질에서 긁어마실 혈액을. 자만한 나비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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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장
“내가 널 너무 고상하게 취급하긴 했어, 뮤리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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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장
오래된 믿음과 새로운 속설이 뒤엉킨 마을에서 수많은 언어가 교차하며 그들의 길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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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장
그를 만족시키고 싶지도 않았다. 그가 닳아가는 것을 관망하며, 서늘한 만족을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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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장
천사에 홀리지 않기를 바라며, 창백한 빛을 향해 걸어간다. 마지막까지 의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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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장
그녀는 검은 천으로 지은 고성이었고, 그 아래에서 사지를 하나씩 옮겨 내려가는 다리 긴 생물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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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그렇게 사이의 조용한 날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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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내 친애하는 제자께서는 군인으로서의 자질보다 무기로서의 효용이 더 뛰어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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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어느 오전, 소녀는 눈을 뜨며 생각했다. 오늘은 정말로 일어나고 말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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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사람을 단지 살아남았다는 탓으로 살떨리게 미워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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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네 심장은 이제 몇 번이나 더 부서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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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Fin.
소재 안내
여러 신체적/성적/정서적 폭력 및 대형 재난 참사, 그로테스크한 신체 손상 언급 등이 있습니다. 소재로 소모하는 것에 그치지 않도록 우회적 서술, 점진적 암시, 시점 이동을 다수 차용합니다.
작중에 언급되는 각종 연구 사례, 산재 사고, 대형 참사, 린치 학살 등은 실제 사례에 기반합니다. 이름과 성이 전부 언급되는 초현상 학회 및 우생학 연구기관 관련 조연들은 전원 실존인물입니다. 사건들의 경우 국내 자료가 없거나 단편적인 서술만 유통되는 경우가 다수이며, 작중에서는 구체적인 지명 및 사건 명을 다수 생략했습니다. 다만 정황은 있는 그대로를 따릅니다. 이에 대해서는 별도로 작성중인 주석 문서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입니다.